[책마을] 판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판결을 하나

입력 2024-02-23 17:52   수정 2024-02-24 00:50

죄란 무엇일까. 판사들은 단죄의 논리를 구성하는 데 집착한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은 그에 관한 책이다. 책을 쓴 손호영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자 법학박사다. 그는 장마다 대법원 판결문 속 문장을 짤막하게 보여준 뒤 왜 판사가 이렇게 판결했는지를 알리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어떤 가게에서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가게 주인이 주웠다. 주위에 있던 손님에게 물었다. “이 지갑, 선생님 것이 맞나요?” 그 손님은 자기 것이 아니지만 “맞다”면서 가져갔다. 진짜 지갑 주인이 그 손님을 고소했다. 1심은 이를 절도로 보고 5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2심은 절도가 아닌 사기로 보고 5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사기라고 판결했다. 절도냐 사기냐는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잘못이라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이해하지 않고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위법인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쟁점이 된 건 푸시백(계류장의 항공기를 차량으로 밀어 유도로까지 옮기는 것)이다. 항공보안법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한 사람을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법은 항로가 무엇인지 정의해 두지 않았다. 대법관들은 법에서 용어를 정의하지 않았다면 사전적 정의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봤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항로를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로 정의했기에 지상에서의 이동 경로는 항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판결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법 체계의 숙명이지만 법이 돈과 힘 있는 자들에게 기울어 있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가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우리(판사들)의 태도와 자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물론 한다. 개개의 사건에서는 올바른 판단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올바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려이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제법 묵직하다. 법이란 무엇인지, 판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판결하는지 엿볼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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